보물로 지정된 호남의 삼한(三寒) 무주 한풍루 寒風樓

 

문화재청이 지난 4월 20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인 무주 한풍루(寒風樓 )를 5월 19일 다녀왔다.

임제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호남의 삼한(三寒)으로 무주 한풍루(寒風樓), 남원 광한루(廣寒樓), 전주 한벽당(寒碧堂)를 꼽았다. 한풍루는 한석봉이 현판을 썼다고 전하며, 수많은 묵객이 글과 그림으로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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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루는 2층 누각 건물로 1층은 정면 3간 측면 4간이며, 2층은 정면 3간 측면 2간 으로 연건평 154.9㎡, 이익공 팔작지붕 건물이다.

본래 무주의 관아 앞 천변(현 무주우체국 자리)에 위치했는데,언제 누구에 의해 건립되었는지는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세조 11 년(1465)전라관찰사를 역임한 성임(成任)이 한풍루를 다녀간 뒤 남긴 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한풍루는 적어도 이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중종 25년(1530)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한풍루(寒風樓) 재객관전(在客館前)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한풍루는 임진왜란 중 불에 타버렸다. 그 후 왜란이 종결되던 선조 32년(1599) 백호 임제의 동생인 현감 임환(林權)에 의해 복원이 착수되었는데,그는 복원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전임되어 후임 남복시(南復始)에 의해 복원되었다. 그 후 인조 24년(1646)보수,숙종 4년(1678)단청,영조 5년(1729),정조 7년(1783) 중수되었다.

그리고 1910년 경술국치(度成國恥) 후 불교포교당으로,무주보통학교 공작실 등으로 사용되었고,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금강변으로 옮겨져 금호루(錦湖植)라는 현판으로 바꾸어 걸게 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으며,그 후 1960년대 들어 《한풍루복구추진위원회》 가 결성되어 19기 년 11월 15일 현 위치에 복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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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루 문화재청이 4월 20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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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루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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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한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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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한풍루 국가보물지정을 축하하는 노란색 리본들이 나무 곳곳에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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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루 옆에 있는 비석군 모두 화강암 재질로 비갓이 없는 형태이다.
 

 

 

무주 한풍루(寒風樓) 옆에는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5기의 비석이 있는데 이 비석들은 무주를 위하여 공을 세운 관찰사와 무주 부사를 역임한 사람 중에서 공이 큰 인물들을 기리기 위한 비석으로 무주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것이다. 왼쪽부터 관찰사 김교근(金敎根)[1766~?], 관찰사 서기순(徐箕淳)[1791~1854], 행부사 김용근(金龍根)[1794~?], 부사 홍익철(洪益喆)[1723~?], 부사 김시용(金始容)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중 김교근은 1815년(순조 15)에, 서기순은 1842년(헌종 8)에 전라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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